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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다이어리

제목 <독/체/오/스/프 종교개혁을 다녀와서>강*우
작성자 임선영 작성일 2024-07-23 15:04:52

**이 후기는 작성한 고객님의 동의를 받은 후, 두루투어가 대신 게시해 드린 후기입니다**

종교개혁 소감문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5월달에 결혼하여 새신랑이 된 강O우입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신혼여행을 어디로 갈지, 그리고 얼마 동안 다녀올지 신부와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좋은데 가서 즐겁게 보내고 아내가 행복하길 바랬습니다. 내심 신부에게 누가 봐도 신혼여행 잘 다녀왔다는 소릴 듣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부가 교회에서 가는 종교개혁 투어를 신혼여행으로 다녀오자고 하는 것입니다.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신혼여행이면 신혼여행이지 무슨 종교개혁 투어냐. 이게 신혼여행이 맞냐. 나는 신혼여행이 가고 싶다고 아내에게 되묻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아내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보는 내가 원하는 신혼여행을 하자고 말하고, 내가 행복한 신혼여행을 가길 원한다고 말했으면서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니까 반대하는거야?결국 제 욕심이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원하는 행복한 신혼여행을 가고자 했지만, 어느 사이에 누가 봐도 그럴듯한, 아내 주변사람들이 들으면 부러워 할만한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던 마음이 들통났던 것입니다. 아내의 행복과 기쁨은 어느 새 무시된 주객전도의 신혼여행을 꿈꾸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처음 종교개혁투어를 떠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저의 이기적인 생각과 마음, 내 뜻대로 하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다 마무리한 지금 돌아보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진실로 하나님이 나를 강하게 붙드시는구나,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구나, 내가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습니다. 

  종교개혁 투어는 종교개혁을 이루어갔던 여러 믿음의 선배들 중에 루터와 얀 후스, 츠빙글리, 장 칼뱅의 모습을 따라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곳, 설교하였던 곳, 핍박을 받았던 곳, 피신하였던 곳 등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니며 그 당시 시대상과 그들이 겪었던 일, 그리고 행하였던 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처음 보게 되었던 종교개혁자는 루터였습니다. 종교개혁 투어를 준비하는 가운데 루터에 대한 평 중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루터의 출신 배경에는 위대함을 암시할 만한 부분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렴풋이 저에게 루터의 이미지는 위대한 종교개혁자, 카톨릭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정을 통해서 알게 된 루터의 모습은 저의 생각과는 달리 연약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언제나 죄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떠는 사람이었으며 카톨릭의 위협에 힘들어하는 사람이었으며,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의문이 드는 결정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이 어떻게 종교계를 뒤흔들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도 이 여정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루터라는 연약한 인물에게 주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카톨릭의 병폐를 건드릴 수 있었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담담히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으며, 주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보고 읽을 수 있도록 약 3개월만에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 등 주님께서 연약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종교개혁자는 얀 후스였습니다. 얀 후스는 루터보다 먼저 있었던 사람으로 보헤미야와 체코 지방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얀 후스도 성경의 권위를 우선으로 두며 성직 매매 등 카톨릭의 여러 부분들을 비판하였고 결국 화형으로 순교당하였습니다. 얀 후스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을 세워갔던 사람들을 후스파(Hussite)라고 부르며 그들은 얀 후스의 죽음에도 그의 가르침을 이어갔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소는 타보르라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에서 후스파 사람들은 얀 후스의 죽음 이후에 지속된 핍박과 고난을 피해 단단한 암반을 파고 지하에 숨어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지하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기 위해서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진정한 믿음을 위해 저렇게 투쟁하는가. 내가 믿고 있는 복음이 진리라고 믿으며 굽히지 않는가. 너무나도 편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상황 가운데에서 얼마나 복음을 붙잡고 있는가. 

  그 다음에는 츠빙글리와 칼뱅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알고보니 우리가 배우고 따르고 있는 개혁주의는 츠빙글리와 칼뱅이 세운 토대 위에 이루어졌었습니다. 앞서 있었던 종교개혁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정리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라는 신앙고백이 이루어졌으며 개신교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습니다. 츠빙글리와 칼뱅도 뛰어난 사람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결국 주님께서 사용하신 것이었습니다. 칼뱅은 강권과 협박에 못 이겨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고, 자신을 쫓아냈던 제네바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칼뱅이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올바른 복음이 계속 이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서두에 말한 대로 이 여정을 통해서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교리 문답을 공부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답은 우리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일반 계시는 피조물과 자연, 섭리,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시는 것이고, 특별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였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일반 계시인 역사를 깊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고통 가운데 있는 그분의 백성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지, 연약한 사람을 세워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는지, 악한 것을 선하게 사용하시는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지금 현재 나를 똑같이 사랑하시고 복음으로 인도하시고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록 내가 연약할지라도,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두려움이 많을지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며, 이미 역사를 통해 증거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게 됩니다. 쉽지 않게 시작하였던 종교개혁투어는 2주간의 짧은 시간으로 끝이 났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온 저의 삶도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그 믿음의 여정을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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